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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서면은 현재 2개의 법정리, 13개의 행정리 아래 85개의 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조 중엽 숙종 2년(서기 1676년) 2월 김화(金化) 고을에 부임(赴任)한 황후영(黃候永)이라는 현감이 현 자등 2리에 있는 상해암(上海巖)의 마루터에 올라가 남쪽을 바라 볼 때마다 남녘하늘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대동(待同) 했던 신하에게 사유를 물은 즉, “남쪽 하늘은 원래부터 그렇게 빨갛게 물들어 있습니다마는 아마 무슨 곡절이 생길 것만 같습니다.” 하고 말하자 현감은 머리를 끄덕이며 “그러면 이제부터 이곳 부락을 자등(紫等)부락이라고 부르라”고 명명(命名)했다. 그로부터 이곳 마을을 자등(紫等)이라 칭해 오다가 해방(解放)후 부터는 현 법정지명과 같이 자등리(自等理)로 칭하게 되었으며,  고려시대에 이곳 김화고을에서는 청기와 공장(工場) 고려자기를 제조하여 원래 산간촌락(山間村落)이었으나 기와공장이 있어 기와가 많이 생산 되는 곳이라 와수리 일대의 주민주택은 거의 와가일색(瓦家一色)이였다 한다.

어느 김화 고을 현감이 부임하면서 김화 오성산 마루터에 올라 자기 고을을 사방으로 살펴보니 현 와수리 일대가 유난히도 아름답게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는 바다나 큰 호수가 없는데 잔잔한 파도의 물결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를 하인에게 물은 즉 답하기를 "저것은 물결이 아니라 그곳에서 많은 기와집들이 서 있어서 햇빛에 반사되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현감은 즉석에서 그곳 동리의 이름을 물결같이 보이는 기와집이 많다 하여 와수동이라 명명하였으며 법정이름도 역시 와수리로 정하게 되었다 한다.

와수리

김화군 서면의 지역으로 와수라 하였는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유리,밀례,무금동,관좌를 병합하여 와수리라 하였다. 옛날 이 고장에는 기와공장이 있어 대부분 기와집이었다 한다. 이를 김화에 부임하는 원이 산마루에 올라 이 곳 지역을 살피니 바다는 없는데 석양에 비치는 • 지붕들이 마치 바다 물결치는 듯이 보인다 하여 와수리라 명칭하였다 한다.

와수리전경

자등리

김화군 서면 지역으로 자등골이라 하였는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송동,석현,축전,조막동을 병합하여 자등리라 하였다. 이 고을에 부임한 황후영이라는 원이 이곳의 상해암 마루터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남녘 하늘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무슨 곡절이 있는 것 같다며 이곳을 자등(紫等)이라 명명한 것이 현재 법정리 제정시 자등리(自等理)로 기재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등리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