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등록문화재
상세설명
건축물 이력
최초 1920년 붉은 벽돌의 조적조 양식으로 건축을 완공한 후
1937년에 지하1층 지상3층 규모의 화산석과 화강석을 쌓아서 만든 석축 건물로 현부지에 성전을 재건축했다.
건축물 연혁
1936년에 기공하여 1937년 건립된 지하1층, 지상3층 규모로 당시 신도수가 500여명에 달했으며 1919년 3.1운동당시,
강원도에서 제일먼저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던 독립운동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1942년 강종근 담임목사가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다 사상법 예비 검속령에 의해 일본경찰에 구속되었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을 받다가 순교를 당하였다.
이후, 6.25전쟁때 공산치하에서 철원감리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 청년학생들의 반공투쟁이 전개되기도 했으며,
전쟁당시 북한정권 치하에서는 인민군막사와 병동으로 사용하면서 교회지하실을 양민과 반공투사들을 고문하는 만행장소로 사용한 곳이기도 하다.
전쟁당시 폐허가 되어 현재는 그 형상을 알아볼 수 없이 파손되었다.
일본 오사카예술대학 건축과에서 1905년 이래 일본서 활동한 미 건축가 보리스의 자료
‘Chulwon, 1936, Church Methodist Mission’ 와 ‘Chulwon, 1938, Methodist Mission House’에 철원감리교회와 목사관의 도면이 남아 있다고 한다.
1층은 소예배실 과 10개의 분반 공부방, 2층은 대예배실로 구성되어있다.